수필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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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참글 작성일19-04-16 10:48 조회3,6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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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수정하였습니다. 아래는 예시입니다.
<수정 전>
나의 고향 제주는 뭍(본토 또는 육지)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예로부터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자체 생산과 소비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태풍과 홍수, 가뭄 등 여러 자연재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외부(본토 또는 뭍, 육지)로부터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 환경에 대비해 늘 일정량의 식량을 비축해 두어야 하는 일은 오랜 생활 습관처럼 여겨져 왔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항상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는 생활 습관이 자연스레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제주의 조냥(절약) 정신이다. 이 조냥 정신이야말로 제주 사회 곳곳에 미치는 제주 문화의 근간이 되어 왔다.
타지방과는 달리 제주의 문화는 남성보다는 여성 위주의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제주를 지탱해 온 것은 남성들이 아니라 제주의 여성들이었다. 조냥 정신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제주의 어머니들은 가족들의 생활비가 필요할 때마다 애써 농사지은 콩이나 보리 또는 참깨 등을 오일장에 내다 파는 일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곡물을 수매하는 상인이나 농협을 통해 계통 출하하는 분들도 많겠겠지만(또는 있겠지만), 그중에는 단 몇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콩 또는 보리, 참깨 한 말(부피의 개념)을 등에 지고 약 한 시간 남짓 부지런히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오일장으로 향해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걸어다녔다.(거리는 5킬로미터)
<수정 후>
예전에 내 고향 제주 사람들은 태풍과 홍수, 가뭄이 발생해도 육지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탓에 늘 일정량의 식량을 비축해 두었다.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를 재해에 대비하느라 절약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으니 이를 두고 제주 사람들은 조냥 정신이라고 부른다. 조냥 정신의 예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주의 여성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다시피 제주를 지탱해 온 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의 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제주의 어머니들이 빠듯한 살림살이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애써 농사지은 것을 오일장에 내다 파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곡물을 수매하는 상인이나 농협을 통해 계통 출하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어머니들은 대부분 단 몇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콩이며 보리, 참깨 등을 마대에 담아 등에 지고 한 시간 남짓 부지런히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오일장을 향해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을 걸어서 다녔다. 버스를 이용하면 될 걸 굳이 힘들게 걸어서 갈까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나 눈이 오는 등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 이상 버스 요금마저 아끼려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정 전>
나의 고향 제주는 뭍(본토 또는 육지)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예로부터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자체 생산과 소비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태풍과 홍수, 가뭄 등 여러 자연재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외부(본토 또는 뭍, 육지)로부터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 환경에 대비해 늘 일정량의 식량을 비축해 두어야 하는 일은 오랜 생활 습관처럼 여겨져 왔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항상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는 생활 습관이 자연스레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제주의 조냥(절약) 정신이다. 이 조냥 정신이야말로 제주 사회 곳곳에 미치는 제주 문화의 근간이 되어 왔다.
타지방과는 달리 제주의 문화는 남성보다는 여성 위주의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제주를 지탱해 온 것은 남성들이 아니라 제주의 여성들이었다. 조냥 정신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제주의 어머니들은 가족들의 생활비가 필요할 때마다 애써 농사지은 콩이나 보리 또는 참깨 등을 오일장에 내다 파는 일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곡물을 수매하는 상인이나 농협을 통해 계통 출하하는 분들도 많겠겠지만(또는 있겠지만), 그중에는 단 몇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콩 또는 보리, 참깨 한 말(부피의 개념)을 등에 지고 약 한 시간 남짓 부지런히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오일장으로 향해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걸어다녔다.(거리는 5킬로미터)
<수정 후>
예전에 내 고향 제주 사람들은 태풍과 홍수, 가뭄이 발생해도 육지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탓에 늘 일정량의 식량을 비축해 두었다.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를 재해에 대비하느라 절약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으니 이를 두고 제주 사람들은 조냥 정신이라고 부른다. 조냥 정신의 예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주의 여성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다시피 제주를 지탱해 온 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의 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제주의 어머니들이 빠듯한 살림살이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애써 농사지은 것을 오일장에 내다 파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곡물을 수매하는 상인이나 농협을 통해 계통 출하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어머니들은 대부분 단 몇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콩이며 보리, 참깨 등을 마대에 담아 등에 지고 한 시간 남짓 부지런히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오일장을 향해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을 걸어서 다녔다. 버스를 이용하면 될 걸 굳이 힘들게 걸어서 갈까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나 눈이 오는 등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 이상 버스 요금마저 아끼려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